한 해에 적게는 예닐곱 편, 많게는 열 편 이상의 사극이 브라운관에 들어선다. 이런 드라마들이 과거를 배경으로 하니 우리 전통음악이 배경음악으로 쓰일 법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사극이 현대 대중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들인다. 드라마에 삽입되는 연주곡마저도 서양 고전음악 문법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잠비나이는 이례적인 업적을 달성했다.
아양 「해어화」 / L&C엔터테인먼트 이번 일은 잠비나이의 인지도가 높았기에 가능했다. 잠비나이는 2013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2015년에는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런가 하면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글래스턴베리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 같은 외국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다른 국악 뮤지션들에 비해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기에 지상파 드라마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 잠비나이만큼의 지명도는 구축하지 못했지만 근사한 음악을 들려주는 국악 퓨전 뮤지션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국악을 적극적으로 찾아 듣는 음악팬이 적은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아래 소개하는 이들이 더 널리 알려져서 언젠가는 사극 사운드트랙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단 「영웅담」 / (주)케이앤아츠 세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무용수로 구성된 아양(A,yang)은 5월 초에 출시한 데뷔 EP <해어화(解語花)>에서 단아함을 한껏 발산한다. ‘달빛 수련’, ‘물망초’ 등 다섯 편의 수록곡은 수더분한 선율, 전통악기와 양악기의 고른 화합으로 시종 맑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에 더해 전통미와 서정성, 구체성을 겸비한 노랫말이 고풍스러운 향취와 입체감을 알차게 전달해 준다. 민요의 창법과 팝의 창법을 아우른 가창은 노래들의 이채로움을 증대한다. 퓨전의 형식을 흡족하게 나타내지만 까다롭지 않아서 대중음악에 익숙한 음악팬들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 신곡 ‘벚꽃잎 흩날릴제’를 발표한 正歌앙상블 소울지기 역시 첫걸음부터 멋스러웠다. 옛 시조, 가곡 등 정가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중심 노선으로 취한 이들이 2014년에 낸 첫 EP <소울지기>는 우아하고도 야릇했다. 예스러운 가사와 잠잠한 대기로는 고상함을 표출했고, 네 명의 가수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화음은 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EP에 실린 ‘사랑 거즛말이’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해어화>에 주연 한효주가 불러 삽입되기도 했다. 세 명의 가수와 전담 연주자들로 팀을 재정비하고 선보인 새 싱글 ‘벚꽃잎 흩날릴제’도 전과 다름없는 은은한 보컬 하모니, 전통악기와 양악기의 조화로 독특한 세련미를 물씬 풍긴다.
3월 세 번째 EP <영웅담>을 발표한 비단은 국악 퓨전 밴드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이들은 ‘한국의 보물을 노래하다’라는 표어를 내걸고 2014년 첫 EP부터 우리의 문화유산, 위인을 음악으로 담아내 왔다. 이순신(‘성웅의 아침’), 훈민전음(‘출사표’), 조선백자(‘만월의 기적’), 심청전(‘달’) 등 우리의 문화를 곱씹고 알려 나가는 활동은 분명 뜻 깊으면서 희소성까지 지닌 매력이라 할 만하다. 이번 음반에서도 홍길동전(‘영웅담’), 태권도(‘태권무희’), 해녀(‘이어도사나’)를 소재로 택해 한국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전통음악의 성분과 서구 대중음악 문법이 친밀하게 어우러진 구성은 비단이 전하는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느끼도록 한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양방언을 둘러싼 키워드는 대략 3개로 압축될 수 있다. 서사, 퓨전 그리고 대화로 말이다.
정규 앨범만 해도 7장에, 애니메이션, 영화, 페스티벌, 다큐멘터리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적 바운더리를 지닌 그가 올 11월 데뷔 20주년 기념 베스트앨범 발매를 앞두고, 실로 오랜만에 스페이스 공감 공연장을 찾는다.